진심의 건축, 영주주택

  • Date2022.02.06

진심의 건축 : 공간이 흐르는 집

영주주택을 방문하기 전, 전달받은 도면과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일면식이 없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의 구성이 필자가 설계하는 방식과 사뭇 달라,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획된 집에 대한 호기심과 내가 이 집의 좋은 크리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두 개층으로 구성된 집은 복잡한 프로그램을 담고 있거나 규모가 큰 건물이 아니었음에도, 전체의 구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체의 구성이라기보다, 전체를 구성하는 큰 질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도로와 대지의 극단적인 레벨 차이, 다양한 외부공간, 화려한 지붕선과 천장고까지, 다양한 계획의 요소들이 보이는데, 전체의 구성이 명확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마스터룸과 거실, 주방이 있는 주 생활공간에서 이 집의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인 복도를 지나 게스트존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축의 방향이 바뀌면서 45도 각도의 사선이 도입된다. 축을 따라 욕실로 진입하며 만들어지는 삼각형 형태의 세면대와 곡선코너는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영주에 도착하여 거리가 조금 떨어진 언덕 아래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전면에 세 개의 구분된 재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로와 대지의 11미터에 달하는 높이 차이는 하단부의 석축 기단, 중앙의 콘크리트 벽체, 상부의 벽돌 매스로 수평적 분할을 통해 대응하였다. 특이한 점은, 중앙부의 콘크리트 기단이 마당의 담장으로 연장되어 뻗어나왔는데, 그 모서리 하부가 땅에 닿지 않아 공중에 떠 있었다. 꽤 긴 스팬을 캔틸레버로 구성하고 있어서 조형적 존재감이 매우 강했는데, 이처럼 과감한 건축적 장치가 전체를 구성하는 방식과 어떤 연계점을 이루고 있는지 호기심을 자아냈다. 

진입레벨인 지하 1층에는 주차장과 취미실, 화장실 등 최소의 공간만 확보한 뒤 주요 생활 공간은 지상 1층에 배치하였다. 지하 1층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바로 보이는 거실의 커다란 창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집중하도록 하는 낮은 천장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2,300MM이라는 치수가 주는 안정감과 계단실의 높은 천장고와의 대비 효과는 드라마틱했고, 동네를 내려다보는 파노라마 창의 시원함도 훌륭했다.  

거실과 주방, 마스터룸으로 구성된 주 생활공간은 연결되고 환원되는 동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스터룸을 지나 욕실과 드레스룸을 통하면 다시 1층의 시작점이었던 계단실을 만나 거실로 연결된다. 동선의 끝을 벽으로 막지 않고, 창문이나 외부로 나가는 문, 다른 공간으로 계속해서 연결되도록 계획하는 것은, 건축가가 자의적으로 공간의 목적 혹은 이름을 규정하여 거주자의 경험을 한정 짓기보다, 거주자 스스로 공간의 경험을 확장하고, 탐험하도록 가능성을 남겨두도록 한다. 주 생활공간은 브릿지 같은 복도를 지나 비일상의 공간으로 넘어가는데, 복도의 한쪽 면은 안마당 방향으로 전면창을, 반대쪽 면은 상부의 책장과 하부의 600MM 높이의 긴 창을 두었다. 하단의 독특한 창 덕분에 이 복도공간은 매우 특별한 곳이 되었다. 안마당과 사이마당이 동시에 느껴지는 반외부공간의 특성을 가지게 되면서, 기능적인 복도가 아닌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특별한 건축적 장치 – 브릿지- 가 된다. 복도를 지나면 문제의 45도 각도의 축과 만나게 되는데 그 끝의 커다란 피봇도어는 다채로운 공간 경험 시퀀스의 클라이막스로 초대하는 환대의 문으로 보인다. 문의 상부는 벽으로 막지 않고 투명한 유리를 설치하여 역시나 필요에 의해 구획된 욕실 공간을 단절하기보다 연결하고 있었고, 사선 복도의 반대쪽 끝은 창을 두어 새롭게 도입된 축의 끝이 외부로 확장되도록 돕는다.

영주주택은 두 개의 분할된 매스, 다섯 개의 마당을 가지고 있어, 주변 동네의 스케일과 풍경을 담고 있다. 이 집은 두 개의 외벽을 가진 셈인데, 기술적인 내외부를 구획하는 외벽과, 동네와 집의 마당을 구획하는 담장이라는 외벽이다. 두 개의 켜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내부의 공간을 외부로 확장하고, 외부의 공간을 다시 동네로 확장한다. 외부공간과 동네를 향한 유연한 확장성은, 흥미롭게도, 동네를 다시 집 안으로 끌어오고 있었는데, 안마당의 길고양이를 위한 집, 앞마당의 길강아지를 위한 집이 그랬다. 동물들은 사람보다 더 본능적으로 이 집이 동네와 관계맺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다.

긴 복도로 구성된 집의 시퀀스를 경험하는 동안 계속해서 변화하는 천장면과 여러개의 천창은 공간을 다채롭게 하면서 적절한 자연광을 받아들인다. 영주주택은 창호의 크기와 위치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경쾌하다. 외부 입면의 구성보다는 내부 공간의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경험을 중시하여 창호를 설정한다. 긴창, 높은창, 사각창, 넓은창, 천창 등 다양한 창호의 사용에도 산만한 느낌이 없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은 설계자의 탁월한 능력 혹은 영주주택에 대한 설계자의 특별한 애정 덕분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주어진 조건에서 계획의 큰 규칙과 시스템을 찾아내거나,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그에 근거하고 기대어 나아가려는 것은 설계자가 가진 두려움 때문이다. 작은 주택을 설계할 때 조차도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매번 새롭게 고민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건축가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질서를 찾거나, 혹은 자신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그 산을 넘는 방법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주택은 아주 특별하다. 어쩌면, 건축가가 일평생 설계를 하면서 한 두 번 밖에 만들지 못할 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의 특정한 한 때의 모든 것을 쏟아 만들어낸 집이 가진 가치는 얼마일까. 결과물은 물리적인 실체를 통해서 구현되지만, 내가 영주주택에서 만난 것은 건축가의 진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 구축물을 만드는 건축에서도, 마음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이다. 결국 좋은 집을 만들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건축가라면,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오는 길에 다시 마주한 캔틸레버 콘크리트 담장은 처음과는 사뭇 다르게 보였는데, 하부의 비워진 틈새가 이 집과 원경의 풍경을 이어주는 소중한 비움으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