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 건축
- Date2023.03.20
공공건축이 아니고서 대부분의 건축 행위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게 되는 사적 주체의 자본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범위에 구획된 대지 안에 법적 요건만 충족시킨다면 사유 재산으로서 자유롭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건축은 이러한 재산 소유 관계에 의해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국가에서 건축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건축가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관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건축이 지니는 스케일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도시에 지어지는 건축물은 아무리 작은 규모가 되더라도 땅 위에 서는 순간 부터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주며 경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 건축물 앞을 오가는 수많은 행인들이 경험하고 감각하게 되며, 건축물은 우리의 일상적 공간 환경을 좌우하는 가장 커다란 구성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는 건축물과 도시가 만나는 접점에 관심이 크다. 그 양자 간의 경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사회가 공간 환경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도시의 공공성은 어떠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가 그 경계 위에 있다.
건축에서 문지방(門地枋, threshold)이란 “문 아랫 부분에 위치하여 문 안팎의 경계 역할을 하는 낮은 판 모양의 물건”을 지칭한다. 흔히 말하는 ‘문턱’이다. 문지방은 기술적으로 공간의 내외부를 경계지을때 문을 설치하고, 내부와 외부의 바닥 재료를 분리하기 위한 장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보다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서로 다른 성격의 영역을 연결해주고, 구분 짓기 위한 도구의 역할이 크다. 이를 우리의 도시 환경 속에서 확장하여 이야기 하면, 문지방은 건축과 도시 가로 환경이 만나는 경계를 처리하는 디테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방문이 용이하다는 점과 함께, 예로 부터 장인정신의 문화가 건설 분야에도 깊숙히 자리매김하고 있어 우수한 퀄리티의 현대건축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양질의 최신 현대 건축을 경험하기 위해서 한국의 건축가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답사 일번지이다. 필자도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들 특유의 집요한 손길로 마무리된 건축물을 확인하러 종종 찾는다. 후미히코 마키(Fumihiko Maki)라는 건축가가 도쿄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다이칸야마(Daikanyama)에 2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건축한 힐사이드 테라스(Hillside Terrace)라는 상업시설이 있다. 이 건축물은 다이칸야마의 4차선 도로인 규야마테도리를 따라 마주보는 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규야마테도리의 보도는 여느 도시 공간에서 흔히 발견되듯이 얕은 경사를 이루면서 건축물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지만, 후미히코 마키는 조금씩 경사를 만들며 내려가는 인도를 기다란 건물이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건축물 내부의 바닥 높이를 미세하지만, 섬세하게 조절하여, 행인이 건축과 만나는 문지방에 단차가 생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축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이렇게 경사진 도시 바닥 위에 건축의 문지방을 그 존재감이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성이 기울여져야 한다.
우리 도시환경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적당하게 시공편의성을 중시하여 앉혀져 있어서, 이렇게 건축물 내부와 도시 가로가 부드럽게 만나는 사례를 찾기 매우 어렵다. 대부분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도로를 향해 불편한 경사가 만들어져 보행을 힘겹게 만들거나, 불필요하게 높은 단차이를 건물 입구에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문지방이 조화롭게 계획되지 않은 건물에서는 자연스러운 수평이동이 어렵고, 편안하고 쾌적한 보행 경험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결과물로는 대단할 것 없는 것이지만, 터파기부터 시작되는 거친 스케일의 토목 작업부터 사람의 신체가 경험하는 섬세한 건축 작업까지 일련의 과정이 섬세하게 계획되어 일관되게 조절되었을때만 성취할 수 있는 고난도의 일이다.
우리 도시의 문지방이 이렇게 열악하게 된 데에는 적당하게 쉬운 방식으로 시공하려는 건축관계자들의 편의주의, 건축과 도시의 길이 만나는 공간의 좋은 사례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한국적 상황에 익숙해진 대중의 무관심이 함께 만들어가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도시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으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곳이다. 개개의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공간 환경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좋은 문지방의 경험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증진시키는 일이며, 조화로운 도시 공간 환경 속에서 우리가 거주하게 되는 방법 중 하나가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