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이라는 건축 유형의 의미
- Date2023.03.20
근대적 건축설계교육의 탄생
건축은 사회 구성원이 약속한 제도의 시스템이 공간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볼 수있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제도, 병원은 의료 서비스의 시스템이 물리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건축의 시작인 셈이다. 이렇게 사회 속의 건축이 그 목적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건축의 유형학(typology)이라 부른다.
현대 도시에는 수많은 유형의 건축들이 용도와 기능에 따라 다른 원리를 지니며 복잡한 현대 사회의 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건축이 하나의 유형으로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폭발했던 서구 사회의 변화와 함께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산업혁명을 관통하며 시민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상업이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근대화의 시기는, 증권거래소, 박물관, 병원, 학교, 교도소등 다양한 도시 구성 요소들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고유한 건축 유형을 정착한 시기였다.
우리가 여전히 ‘모더니즘의 세상에 살고 있다’라는 이야기는 근대에 구축된 건축의 유형들 덕분에 현대 도시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다양한 건축의 근대적 유형들 중에서 현대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을 하나 골라야 한다면, 쇼핑몰이 흥미롭게 떠오른다.
서구사회의 모더니즘은 대개 유럽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근대적 건축 유형들도 대개 유럽의 산업혁명 시기를 겪으면서 그 형태가 갖추어졌다. 그런 면에서 쇼핑몰이라는 건축 유형은 그 태생이 미국에 있다는 점이 독특한 지점이며, 중요한 함의를 지니게 되는 부분이다. 쇼핑몰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미국의 교외가 형성된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은 20세기에 들어서며 세계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사회가 급격하게 팽창하게 된다.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기존의 도심이 아닌 교외지역에 대규모로 주택지를 공급하게 된다. 이는 오랜 역사 속에 도시와 그 주변이 정착지로 활용되던 유럽과 달리, 미개척지가 전국적으로 퍼져있던 미국의 상황에서만 가능했던 현상이다. 여기에 석유회사들과 자동차 메이커들의 로비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며, 아이젠하워 정부에 이르러 주된 이동 교통 수단을 승용차로 바라보는 정책적 방향 설정이 더해졌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교외가 고속도로를 따라 퍼져나가는 교외화 현상이 가속화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교외지역은 도심으로 통근하는 근로자들의 베드타운으로 기획되었기에, 주택이라는 단일한 용도로 가득찬 도시가 되었다. 대부분 단독 주택으로 지어지며, 교외는 전체가 저층 저밀도의 건물로 가득찬, 승용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는 자동차 중심의 환경이었다. 주거 중심의 도시였으므로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복합적인 토지 용도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교외 지역도 공동체를 이루고 다양한 여가활동이 필요했기에 이를 감당해줄 건축 유형이 자연스레 등장하게 되었다.
주택의 뒤를 이어 교외지역에 나타난 또 다른 건축 유형은 소비 행위가 구체화된 쇼핑몰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본질적인 공간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이 주택 다음으로 대두된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있다. 그렇게 교외지역에는 대규모의 쇼핑몰들이 하나씩 들어서게 되었다. 교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서 쇼핑몰은 거대한 주차장에 에워싸인 섬과 같은 공간이고, 그 내부에 들어서면 제각기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깔끔하고 편리하며 안전한 공간의 분위기를 뽐낸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은 미국의 교외 쇼핑몰을 발명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그는 쇼핑몰 건축 계획에 있어서 일종의 공식을 만들었다. 교외지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모이고 밀집된 활기를 자아낼 수 있는 곳이 쇼핑몰 밖에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그 안에 쇼핑과 무관한 공공서비스, 갤러리, 공원, 레져시설, 도서관 등의 기능을 하이브리드했다. 교외의 유일한 오아시스로서 쇼핑몰을 일종의 사회생활의 거점, 커뮤니티의 중심공간으로 구상했다는 부분이 큰 의미를 지니게되었다. 이렇게 복합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몰(mall)이라는 공간 유형이 지니는 특유의 수용성 때문이다. 몰은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소구하는 행위인 산책을 매개로 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기능을 독자적으로 병치할 수 있는 공간 언어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기능공간들이 어색하지 않게 한 공간에 자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건축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할 수 있는 건축가 렘콜하스(Rem Koolhaas)도 ‘모든 것이 쇼핑몰이다’라는 표현을 한적이 있다. 상기한 공간적 특성 덕분에 현대 도시에서 쇼핑몰이라는 건축 유형은 단순히 상업공간의 영역을 넘어서 철도역, 미술관, 호텔, 문화복합공간등 고밀도의 행위가 집중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쇼핑몰이라는 유형은 현대 도시에 가장 큰 영향을 마치는 모더니티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