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 건축
- Date2022.09.29
아나바다 건축
*아나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의미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일종의 물건 재활용 캠페인
고백하자면, 건축을 업으로 삼은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건축가의 바람직한 모습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어떤 자세로 건축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답을 내리지 못한 고민은 매일같이 달려드는 일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진화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전통적인 건축가는 창조자의 입장에서 일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창의력을 발산하고, 고뇌하고, 압도했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지고, 분업화되고, 전문화되다 보니, 과거의 건축가처럼 모든 것을 홀로 지배하기 어려워졌다. 점차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많아지고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고, 조율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건축가의 역할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건축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절대자의 입장이 아니라 기존세계가 작동하는 질서를 파악하고 맞추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도시를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건축가들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다. 도시를 관찰하는 것은 건축가에게 겸손함의 미덕을 일깨우게 한다. 광활한 자연앞에서 인간의 작은 존재를 깨닫는 것처럼,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요소들로 만들어지는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하나의 점과 같은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것이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는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는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 컨텍스트에서 하나의 요소를 더하는 것이 건축가의 업무라면, 나에게 주어진 도화지가 백색의 빈 종이가 아닌 이미 기나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 의해 덧칠해진 복잡한 그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 대치동 실측조사: 은마상가를 중심으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매년 진행하는 서울 생활문화 자료조사의 일환으로 대치동의 건축공간실측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은마아파트, 은마상가, 학원가, 그리고 구마을 이렇게 네 개의 조사지역을 설정하여 각각의 특색에 맞는 방식으로 공간기록 작업을 하였다. 은마상가의 경우, 복잡하고 활기찬 재래시장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진이나 동영상, 스케치가 아니라 도면이라는 툴을 사용했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상황을 재현하는 투시도의 관점과는 달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설계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전체를 파악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면은, 지하세계를 이해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지하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화려한 재래시장의 세계가 펼쳐지는 놀라움을 다양한 업종의 작은 가게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장면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은마상가와 더불어 아파트의 공간의 기록을 남기는 데는 기준 평면도와 상황에 따라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개별 유닛 평면도를 조사했다. 인공구조물로서의 아파트라는 피상적 이미지와는 달리 1970년대에 만들어져 40년이 넘는 시간의 켜가 쌓이는 동안 자연스럽게 녹지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우리가 발견한 그곳의 리얼리티였다. 이를 도면에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면서, 아파트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공간구조가 모두 한눈에 보이는 도면을 선택하였다. 아파트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켜를 가지고 땅과의 관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표현되길 원했다. <그림1,2-대치동 실측조사 ⓒ구보건축>
- 구룡마을 실측조사: 최소주거 공동체마을
구룡마을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무허가 주거마을인데 재개발 사업시행이 결정되어 마을이 사라지기 전, 그 모습을 담아두기 위한 실측조사를 진행했다. 처음으로 구룡마을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인상은 도시의 내부 창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있는 벌거벗은 도시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속살을 보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최소주거’는 그런 구룡마을에서 찾아낸 건축적 주제였다. 각 세대의 실내공간을 여유있게 확보하지 못하기에, 길로 사용되는 외부공간을 사적으로 변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작은 텃밭, 화분을 가꾸거나 부족한 창고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었고, 심지어 냉장고나 세탁기등을 길가에 내놓고 사용하는 경우도 보았다. 공간의 변용뿐 아니라, 구축요소의 다양한 활용도 눈에 띄었다. 최소한의 물리적 요소들을 최대한 사실에 근거하여 도면으로 기록하되, 풍성한 나무나 사람의 움직임을 도면에 포함하여 사회적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는 구룡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건축은 정복이 아닌 순응의 대상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가장 값비싼 사치품을 구입하듯 설계일을 의뢰하는 건축주를 만나기도 한다. 건물을 짓는데 돈을 투자 할 만큼 재력과 안목이 있고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건축주와 일하는데 왜 신나지 않는걸까, 고민해 본적이 있다. 평소에 사용해 보기 힘든 상대적으로 고가의 재료, 구법, 건축적 장치들을 시도해보는 기회에 흥이 나면서도, 마음한켠 망설여지는 지점이 있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조작하듯, 새로 산 신차가 부드럽게 작동하듯, 건축도 그렇게 세련되고, 문제없고, 불편함이 없기를 기대한다. 건축가는 철저한 서비스업 정신으로 무장하여 하자로부터 안전하고 무결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연 건축은 완벽히 통제가능한 대상일 수 있는가? 과학기술은 발달하여 구조의 결함이 없이 구조안정성이 확보되고, 단열과 높은 에너지 효율을 통해 녹색건축을 만들고, 완벽한 무장애 조건을 만족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점차 강화되는 법규와 성능기준을 만족시키다보면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여기서 건축은 오트쿠튀르인가, 완제품인가, 도시의 한 부분인가. 사용승인 검사에서 불과 몇 cm의 오차에도 재시공을 요구하는 높은 기준의 법적 잣대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그 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무균의 건물밖으로 한걸음만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정글과 같은 도시 환경을 생각해보면 무언가 기괴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화재사고, 붕괴사고가 일어나면 건축법과 조례를 땜질하듯 바꿔서 감시와 규제를 강화하면서 통제하지 못하는 도시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인간이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도시는 절대 안전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보답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건축의 중요한 가치인 ‘자연스러움’은 점차 상실되고 있다. 건축은 완벽하지 않다. 건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겪고, 낡고, 녹슨다. 오차 없이 의도대로 구현되는 설계와 시공을 꿈꾸지만, 여전히 사람의 노동력으로 한땀 한땀 지어지는 건물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에 실망하기보다, 건축물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었고, 우리는 건물에 적응해야 한다. 순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건축과 도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온하다. 주어진 조건을 수용하고 필요에 따라 최소의 변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겸손의 태도이다. 그렇게 했을 때, 건축의 자연스러움이 회복되고,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가 진행된 건축물의 모습이 그윽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유는 서로가 맞춰가는 과정이 시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전봇대집: 낡은 동네 풍경 구출하기
서계동에 1971년 완공한 2층 건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다가온 인상은 건물 모퉁이에서 덕지덕지 얽힌 케이블들을 힘겹게 받치고 있던 전봇대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은 건물을 전봇대집이라고 명명하고, 자칫 동네 경관의 방해자로 인식될 수 있는 전봇대의 존재를 긍정하고, 이를 우리 건물의 일부분으로 읽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의 낡은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면서 부각시키려 했던 부분은 50년 전에 축조하며 쌓인 흔적들을 다시 수면위로 불러오는 것이다. 골목과 단절되어 폐쇄적인 모습을 띄던 저층부의 벽들은 주요 구조부위만 남겨두고 최대한 덜어내어서 가볍고 투명한 공간을 길 위에 드러내고자 했다. 기존 기둥에 오랜 세월 덧붙어 있던 불필요한 장식물들을 떼어내고, 조적으로 둘러싸인 기둥의 거친 면을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노출시키고, 별도의 조명으로 그 텍스춰가 건물 디자인의 일부가 되도록 의도했다. 그리고, 유리벽으로 감싸인 거친 기둥과 골목길 사이에 새로운 시간이 덧대어짐을 나타내기 위해 흰색으로 도장된 철판으로 기다란 화단을 두고 조경이 부족한 골목길에 녹색공간을 더해주었다.
- 느린 공간 Slow Work: 거주와 일터 그 어딘가
38가구가 살던 두 동의 연립주택은 느슨한 일터가 되었다. 바닥난방이 되고, 작은 테라스를 가진단독실을 가진 집 같은 사무공간으로 바뀌었다. 건축법으로 허용되기에 일명 서비스 면적이라고 불리던 주택의 발코니가 공간의 원상복구를 통해 ‘진짜’ 발코니로 변했다. 주차면으로 가득찬 지상1층의 필로티 공간은 줄어든 법적 주차면적을 활용하여 근사한 내부정원으로 꾸몄다. 벽식구조로 이루어진 구조형식은 공간을 잘게 나누어 미로와 같은 평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소한의 벽만 철거해서 필요한 부분에 개구부를 만들고 1인 혹은 2인을 위한 사무공간을 만들고 탕비실, 회의실, 화장실은 쉐어하는 방식으로 제안하였다. 효율적이고 유능한 이미지의 코워킹 공간이 아니라 느리고 개인적인 업무공간을 상상했다. 건축주는 이 곳에 오는 이들이 환대받고 위로받길 원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건축가는 복잡한 도심에서 조용하고 단순한 나만의 개인공간을 누리는 곳을 만들었다. 외단열시스템과 물갈기 마감의 화강석 판석으로 된 외장재를 제거하고 따뜻한 색감의 주황빛 벽돌과 골무늬 콘크리트 패널을 사용하여 외장마감을 변경하였다. 발코니로 변경된 외부경계부는 자연스럽게 입면에 깊이감을 더해주었다.
- 원스페이스 One Space: 도심지의 종교시설
복잡한 도심지에 있는 종교시설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진다. 대중에게 활짝 열려있는 동시에 신자들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 될 것. 이를 위해 건물이 도시와 만나는 면을 중요하게 다뤘다. 텍스타일Textile이라는 반투명한 패브릭Fabric을 기존 입면에 추가로 덧붙이고, 얇은 켜의 테라스를 조성하여 교당과 주변 환경과의 거리감을 조절하고자 했다. 저층부는 베이커리 카페가 입점하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건물 1층의 전면부는 과감하게 조경을 위한 공간으로 제안했다. 음식점과 사무실로 사용하던 평범한 근린생활시설에 예배당으로 사용가능한 높은 층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상층 (5층)의 지붕을 철거하고 2.3m의 높이를 추가로 증축하여 5m 이상의 층고를 가지는, 1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 노원책상: 지역 사회의 라운지가 되는 청사 로비
노원구청은 청사가 신축된 1990년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듭하면서 시간의 켜가 곳곳에 쌓인 건물이었다. 당시의 청사 건축이 대부분 그렇듯이 계획적으로 마련된 마스터플랜 없이 건물의 면적을 늘려온 터라, 전체 청사군의 허브 공간 역할을 해야할 로비가 애매한 크기와 공간 구조로 중앙에 자리잡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청사의 로비가 담당하게 되는 다양한 서비스 기능들이 추가되었고, 기존의 로비는 질서를 잃은 채, 온갖 요소들이 각기 큰소리를 내며 서로 충돌하는 환경이었다. 이에 우리는 문화와 휴게라는 기능을 더함과 동시에, 청사 단지를 연계하는 로비 공간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구축하고, 적절한 질서의 스케일을 제시하여, 본청사의 입구, 식당, 지하주차장, 신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허브로서 로비를 계획하려 하였다. 로비 문화휴게공간이 지역 사회의 라운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필요에 의해 청사를 방문한 주민들이 느슨하게 시간을 잠시 보낼 수 있는 건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밝은 색의 테라코타를 오픈조인트로 외벽 시공하였으며, 내부에도 동일한 재료로 벽체를 마감하여, 외부와 내부, 도시와 공공건축의 연속성이 자연스럽게 확보되도록 하였다. 내부에는 가구로 구획한 다양한 기능영역들이 배치되고, 자연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도록 커다란 내부화단이 로비의 중심이 되도록 하였다.
- 빌라집: 문지방 건축
다가구주택으로 사용하던 빌라집을 서계동 주민들을 위한 거점시설로 탈바꿈하는 리모델링 설계를 구보건축에서 진행하였다. 한 층에 약 18평의 면적을 가진 작은 건물을 층별로 목공수업을 위한 동네목공소(지하 1층), 마을상담소 및 쉼터(1층), 공유오피스(2층), CRC 사무소(3, 4층)로 계획하였다. 우리는 도로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부분을 소위 ‘스레숄드(threshold, 문지방)’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스레숄드가 얼마나 사용자 친화적인지, 섬세하게 계획되었는지, 적절하게 열고 닫는지에 따라 일상 공간의 질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빌라집은 동네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곳이 될 터이니 이 스레숄드를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현황 상 빌라집 앞쪽은 4m 폭의 차도에 면하고, 뒤쪽은 2m 폭의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앞쪽에는 주 출입문이 있는데, 도로에서 약 70cm 높이를 올라와야 들어갈 수 있다. 더군다나 도로 자체에 경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이 차를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레벨 설계가 필요했다. 작지만 편안한 진입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계단으로 단차를 극복했고, 입구의 영역성을 부여하기 위해 1층 높이만큼 흰색 도장 철판을 세웠다. 기존 건물의 입면 재료와 같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바닥을 마감하고, 양쪽 옆에는 벤치도 만들었다.
도시와 공존하기
이 작업들의 공통점은, 주어진 조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체크하고, 설계가 끝나고 공사하면서도 체크하고, 마무리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주어진 조건을 비틀고 정리하고 (일반적으로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면서) 다른 쓸모를 가진 곳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일이다. 결과물은 화려하지 않고, 독창적이지 않고,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처럼 편리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일을 하는가.
건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쓰고, 용도를 다하면 철거라는 과정을 통해 폐기할 수 있다는 사회의 통념에 반대한다. 계산기를 두드려서 경제적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규모 철거와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도시와 건축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고, 우리는 그 안에 속하여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거친 단절이 아니라 부드러운 변화를 통해 맞춰가며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은 구분될 수 있는 타자가 아니기에, 더 좋은 도시와 건축을 지어가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가 뚜렷해진다.
그에 더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을 고민한다면, 투입되는 물적 자원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고민하고 검토하는 시간과 그에 필요한 인력을 늘리는 것만이 효율적인 자원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에서는, 설계과정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여, 늘 빠듯하게 주어진 시간에 쫓기고 적은 설계 비용에 시달린다. 급하게 계획하여 대충 짓고 적당히 쓰다가 폐기처분한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도시 만들기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