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요

  • Date2021.05.17

한국은, 특히, 서울은 재미있는 곳이다. 옛 것과 새 것이 뒤섞여 있으며, 어제 있던 건물과 장소가 오늘에는 사라지고, 없었던 것들이 어느날 생기기도 하고, 구불구불 엉켜있던 골목길이 아파트 단지로 변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지하철과 버스 시스템을 자랑하며, 동시에 많은 차량인구를 소화하는 도로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도로에 불법주차된 차량과 보행로를 무단점유한 짐과 점포의 가구들은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이 알아서 피해야 하고, 제멋대로 울퉁불퉁한 도로는 유모차와 휠체어에게 친절하지 않다. 지하철을 갈아타려면 오르락 내리락 복잡한 동선을 쫓아가야 하며, 택시와 오토바이는 제멋대로 질주하고, 도시 곳곳은 연중 공사중이다. 부족한 주택을 차지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몇 시간에 달하는 통근전쟁을 매일같이 치뤄낸다. 미세먼지가 잔뜩인 정글 같은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최근에 ‘좋은 동네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반려동물을 산책시킬 수 있는 공원과 길, 편의점과 카페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 맛있는 빵집, 작은 도서관 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것들이 있는 갖추어져 있는 동네가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파트 단지임을 알았다. 날것의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들과의 일상을 보호해주는 주거환경을 사람들은 원하기에, 개인들이 모여서 스스로의 돈과 노력을 들여 단지를 만들고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몇 십억 단위를 호가하는 아파트의 개별 주거공간은 막상 단지 밖의 개별도생하는 빌라의 그곳과 크게 다를것이 없다는데 있다. 결국, 사람들이 큰 돈을 지불하고 얻는 것은 집 내부의 퀄러티가 아니라 공공에서 책임져야했던 –하지만 방치해왔던 –인프라 (주차공간, 커뮤니티시설, 쓰레기처리공간, 건물유지보수, 안전한 보행환경 등) 시설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2021년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이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인프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의 비극은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그곳에 속한사람과 속하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배타성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경계짓기 위해 게이트를 차단하고, 커다란 단지를 둘러치는 거대한 담을 쌓는다. 사회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주거문화가 형성되고, 도시적으로는 커다란 섬과 같은 단지가 도시의 흐름이 끊는다.

이렇게 개발되어버린 대규모 단지는 역행하는 방식의 개발 – 소규모로 다시 쪼개지는-이 거의 불가능하여, 계속해서 도시의 섬으로 남게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필요에 따라 노후된 건물과 길도 적응해야 하는데 거대단지의 변화수용력은 낮을 수 밖에 없다. 거대단지에 의해 도시의 흐름이 끊긴 단지밖의 세상은 어떤가. 단지 안에 들어가지 못한 빌라와 다세대, 다가구가 모여있는 동네는 계속해서 열악해지고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기를 기다리며 버려져간다. 안그래도 체계없는 도로 시스템은 맥락이 끊겨버림으로써 더욱더 엉망이 되고 비슷한 규모의 작은 건물들이 있던 곳은 지루한 담장과 높은 옹벽으로 바뀌어버렸다. 이 뿐만이 아니라, 공공이 제공해주지 않는 주차장을 개별필지에서 해결하라는 건축법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들이 필로티 형식을 취한다. 작은필지 안에서 용적율/건폐율/일조사선을 지키고 나면 건물은 그 고유의 품위와 개성이 없이 건축법에 의한 결과물로 형태가 만들어진다. 길가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건물과 도시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필로티 주차장 속을 헤매고 다닌다. 오래된 집을 고쳐쓰고자 하여도 접근이 가능한 도로가 없고, 지중화되지 못한 전선들은 무질서하게 공중을 떠다닌다.

공공이 해줘야하는 이런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중요하고 실제의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를 깨닫는다.만약 매일 저녁 지나치게 피곤하고, 하루종일 이유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뭔지 모른겠다면, 어쩌면 원인은 내 자신이 아닌, 내가 사는 도시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건축가로서 공공건축에 관심을 두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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