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 1

  • Date2021.10.10

뭉개지 않고 선명하게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아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면,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일까에 대한 스스로의답이 여러 차례 변하는 것을 느낍니다. 초반에는 매력적인 형태나 화려한 외관을 가진 건물들이 멋져 보였다가, 건물 자체는 평범하더라도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생각이 멋있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 호감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좋은 건축’에 대한 생각은 고정되지 않고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하여 몇 가지의 특성들을 나열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설계는 주어진 조건을 파악하고 그것을 변형하여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건축이 대응해야 하는 문제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하여 상대적으로 사소한 부분들은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기존의 관습에 따르거나, 시공하는 주체가 알아서 하도록 남겨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장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도면에 담지 못하고 임의로 만들어지는 것들은 그 형태나 만듦새가 날이 서있지 못하고, 뭉뚱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좋은 건축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건축가의 의도대로 선명하게 잘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건축가들은 종종 사소한 것에 비정상적일 정도의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도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작고 큰 경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평한 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약간의 구배를 가지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건물의 바닥은 평평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경사진 도로와 평평한 바닥을 가진 건물이 잘 만나기 위해서는 도로의 경사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건물바닥의 기준높이를 적절하게 위치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도로와 건물이 만나는 방식은 선명하지 않고 뭉개져있게 됩니다. 건물 전체의 형태나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건물과 도로가 만나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건물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첫 장소이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불쾌한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우아한 현관’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건물과의 드나듦에 있어서 여유있는 공간, 자연스러운 단차, 비를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캐노피가 필요합니다. 또한 현관은 건물과 도시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공간을 잘 다루는 것은 도시와 건물의 흐름을 잘 연결하고, 사람이 건물로부터 대접받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빌라집 리모델링 변경전(좌)과 후(우)
ⓒ 구보건축(좌), 텍스처온텍스처(우)

건물을 지으며 우리가 놓치기 쉬운 또 다른 요소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빗물을 받아 내리는 홈통의 위치와 형태입니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홈통의 위치 정도만 설계단계에서 지정하고 기성제품으로 된 홈통을 얼기설기 연결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의 입면을 디자인하면서 홈통이 외부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여 도면에 표현해야 하지만, 디자인의 주요한 단계에서는 생략되기 일쑤입니다. 혹은, 그 최종의 모습이 마뜩지 않아 하자의 위험을 감수하고 홈통을 건물내부로 숨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홈통 뿐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온갖 추가설치물 (거터, 연통, 환기팬, 심지어 지중화되지 못한 전선이 건물을 뚫고 들어가는 지점, 에어컨 노출배관 등)로 뒤덮인 건물의 모습이 그대로 도시에 노출되어, 사람들은 그것을 일상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이화동 근린생활시설의 입면 구성요소로 다루어진 홈통 디자인 ⓒ 텍스처온텍스처

도시환경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난간도 중요치 않은 부분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지는 중요한 건축요소인 난간은 계단과 경사로등에 설치되는데, 그곳은 높이가 변화되는 곳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세심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난간의 재질, 색상, 두께, 고정방식 등은 많은 고민도 필요합니다.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장치이기에 관련 법규정을 충족하면서도 전체 외관에 어울리는 요소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그만큼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기능에만 충실한 기성 난간을 도시 곳곳에 무심하게 설치하여 공공시설, 지하철, 육교, 경사로 등에서 우악스런 만듦새를 매일같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입니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사소한 건축요소들은 생존의 문제는 아니기에, 돈과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투입하여 건물을 짓는 경우에는 무시되기 마련입니다. 우리사회가 건축물을 단순 필요를 만족시키는 대상으로 볼 것인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마음가짐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선명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건물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점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충 만들어진 물리적 환경은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감각하고 인지하는 사람들의 매일의 경험을 좌우합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한 작가가 하는 얘기를 공감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작가는 혼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 먹을 때도 대충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손님을 대접하듯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밥을 하고, 식탁을 차리고, 여유있는 시간을 즐기며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대접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즐거워져 본인에게 있었던 우울증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제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성껏 잘 차려진 밥상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의를 다해 만들어진 환경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행복감을 고취시키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도시환경을 둘러보면 썩 만족스럽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혼자 먹을 밥을 대충 차려서 먹듯이, 끼니만 겨우 때우는 식의 식사의 형태가 우리 도시환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날라다니는 전신주의 전선들, 골목길을 어지럽히는 불법주차, 정해진 수거시스템도 없는 쓰레기배출 등이 그렇습니다. 새로 깔아도 몇 해를 버티지 못하고 울퉁불퉁해지는 보도블럭,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 힘든 도로턱, 보행자의 권리따위는 관심없는 지하철 환풍구 등이 그렇습니다. 대충 기능만 다 하면 된다는 식의 보기 흉한 홈통과 보일러 연통들, 건물을 마구 뚫고 나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에어컨 배관, 음식점의 환기를 위해 출입구 앞에 설치한 대형 환풍기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소위 사소한 부분들이라 여겨지기 쉬워, 설계단계나 심지어 시공단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출발점은,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것인데, 설계자는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잘 계획하고 시공자는 끝까지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설계대가는 적정하게 주어지지 않고, 시공하는 일과 만드는 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부족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업계를 대우해 주어야 그 변화는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충 차린 밥상이 아닌, 진심으로 차린 밥상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처럼, 제대로 만든 도시와 건축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그 변화 역시 시작될 테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거주와 생활의 방식을 구성원의 만족도보다는 돈으로 환산되는 정도에 더 민감한 것을 보면 쉽지는 않은 일 같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외부에서 만들어지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난간 하나, 홈통 하나 열심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는 많은 건축가와 시공자들의 노력이 변화의 씨앗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