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 5
- Date2022.03.01
적당히 불편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애니매이션이 있습니다. 2008년도 픽사에서 만든 ‘월-E’에는 쓰레기가 가득찬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고물 로보트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환경오염이 심각해져 자체적인 정화능력을 넘어서게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우주로 대피하고 지구에는 쓰레기 청소 로보트만 남아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오염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도피한 사람들은 우주선 안에서 생활하는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시스템 덕분에 편안하고 쾌적합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노동이나 사고의 필요가 없이 만능 의자에 앉아 전자화면을 통해 오락만 추구합니다.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인간은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주체성이 상실된 모습입니다. 그렇게 무력해진 인간이 우주선에 찾아온 월-E로 인한 한바탕 소동을 통해 다시 지구로 돌아가면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월-E와 이브라는 두 로봇의 아기자기한 로맨스를 담고 있지만, 그 너머에는 현대문명의 자연파괴와 인간의 주체성 상실이라는 보다 심각한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개선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야단법석인데,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내가 원해서 가고 있는 것인지는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코믹하게 묘사된 뚱뚱하고 할 일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에게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편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 결과가 무력한 인간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 건축이라고 믿는 저는, 이롭다는 것이 몸의 이로움과 정신의 이로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이 즉각적으로는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해준다고 느끼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소 ‘불편한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건축가들의 얘기를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집이란 과연 어떤 집일까. 우선 내 견해로는 다소 불편한 집이다. 소위 동선도 길어서 좀 걸어야 하고 대문도 나가서 열어줘야 하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를 훔치며 가족의 살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런 집이 건강한 집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다소 불편한 집에서의 삶이 궁리를 만들고 생각하게 하고 사유케 한다. 다시 말하면 사유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을 다시 관조하게 하는 집, 이 집이 아름다운 집이며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다. ”‘비우면 채워진다’ 건축가 승효상 인터뷰, Samsung&U 2009 7/8 |
이는 건축물이 사람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중심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사색하고, 생활하고, 일상생활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집과 공간은 어떤 곳인지 계속 질문하고 탐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실현한 건축물도 있으니,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입니다. 그의 첫 설계작인 ‘스미요시 주택’은 1976년도에 지어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건축주의 이름을 따서 ‘아즈마 하우스 Azuma House’라고도 불리우는 이 작은 주택은 오사카의 스미요시 지역 작은 골목길에 있습니다. 전면이 3미터 폭으로 좁은 2층 건물인데, 다른 주택과는 다르게 전면부가 창문도 없이 닫힌 콘크리트 입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좁고 긴 땅의 대지조건에 맞추어 전체길이를 3등분으로 나누어 전면과 후면에 주거공간을 만들고 가운데 공간은 지붕이 없는 독특한 중정을 만들었습니다. 1층은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고, 2층에는 침실 2개가 있습니다. 주택의 옆집이 거의 맞닿아 있어 전면과 마찬가지로 측면을 닫고 대신 가운데 중정을 두어 환기와 채광을 해결하였습니다
이 집의 유명세는 당당하게 불편함을 피력하는 태도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데, 방과 방이 중정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으러 거실에 갈 때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하고 날씨가 추울때면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합니다. 방문을 열면 바로 외기에 면하기 때문에 단열에도 취약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난방과 단열이 매우 효율적인 집에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여름에는 냉방병에 대비하여 긴팔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지기 힘든, 이상한 집이지요. 실제로 이 집은 단열재가 거의 없는 집이라고도 해서, 이 집에서 수십년을 살고 있는 건축주를 건축가가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재미있는 집입니다. 스미요시 주택이 지어진 직후, 1979년에는 논란속에서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했습니다. 거주자의 삶을 터무니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꽤 있었는데, 그에 대한 안도 타다오의 항변은 이렇습니다.
‘집주인에게 번거로움을 강요한다는 점 말고도 건축가의 이기심에서 나온 집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예술작품처럼 자기 취향대로 만든 집이라는 비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코 이 집은 그 안에서 영위되는 생활을 무시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생생활이란 무엇인지, 가정집이란 무엇인지를 나 나름대로 철저히 생각하고 계산해 낸 건축이다.’ |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건축가가 성취하길 원했던 것은, 자연과 괴리된 삶이 아닌 적극적으로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과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라는 메시지였을 겁니다. 단순하면서도 단호한 건축가의 의도는 군더더기없는 결과물로 완성되었고,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이렇게 작은 건물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이 문득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연 본래의 생명력이 거세된 자연입니다. 인간의 편안함을 방해하지 않는 정돈된 자연, 얌전한 자연, 편리한 자연입니다. 현대인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의 자연을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연의 진짜 모습은 예측불가능하고, 춥고, 덥고, 난폭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집의 근원이 위험한 자연에서 인간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으니, 건축과 자연의 서로 배타적인 관계는 건축의 태생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점점 더 편리해지고 싶은 인간이지만, 불편한 자연에서 완전히 괴리되어 인공물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과학과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 믿는 삶의 방식은 현재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의 전지구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삶의 태도는 인간이 자연에 속한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구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함으로써,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편리를 위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계절변화에 따라 적당히 춥고, 적당히 더우며, 적당히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진다면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삶이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사고의 주체성을 가지게 하고, 정신적으로 더 풍부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이끈다는 점입니다. ‘적당히 불편한’ 건축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자연과 교감하게 하기에, 더 좋은 건축이라 믿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건축물이 단지 기능적인 요구를 해결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기에, 그런 고민들을 계속해서 놓지 않는 건축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