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필지가 만드는 도시의 가치

  • Date2023.11.27

현대 도시계획 분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저작물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닌 기자 출신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1961년에 쓴 책이다. 뉴욕 맨하튼의 소규모로 잘게 쪼개진 도시 블록 그리드가 만드는 도시 환경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평가했던 제인 제이콥스의 이 책은 도시계획의 가장 설득력 있는 저서로 현재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다양한 토픽을 통해 현대 도시계획이 지켜야할 가치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작은 필지들로 구획된 도시 블록이 지닌 가치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다. 그녀는 작은 단위의 필지들이 생산할 수 있는 도시의 다양성과 활기에 특히 주목하고 이를 공들여 주장하였다.

도시는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에 따라 자발적 변형을 통한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도시 계획은 이 변화무쌍한 거대 생명체의 생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주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도시계획과 그 지향점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 도시의 가장 특징적인 틀거리의 변화는 필지의 대규모화라고 할 수 있다. 해방과 전쟁으로 근대 사회를 맞이한 우리 도시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와 경제 활동을 수용하기 위해 도시 계획에 장기적인 시간 프레임을 담아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양적 공급을 만족시키기 위한 속도전이 거듭되었었고, 우리 도시의 모습은 체계적인 가로와 기반시설이 마련되지 못한 채 형태를 갖추어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틀이 마련된 도시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유지 시키기 위한 도시 구조를 갖추지 못한 모습을 도처에서 드러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재개발을 통한 정비라는 도구가 현대적 삶을 만족시키는 도시 개발의 주요한 도구로 자리매김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 재개발 방식의 도시 정비가 우리 도시의 작은 필지들을 병합하여 아파트로 상징되는 거대한 필지의 단지 중심의 도시로 변형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된 도시에 남겨진 소필지의 도시블럭이 그 가치를 더해가는 형국이다. 최근 몇 년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위 ‘힙’한 동네로 입소문이 났던, 성수동,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등이 공통적으로 지닌 특징은 소필지가 모인 휴먼 스케일의 동네라는 데에 있다.

도시가 단지 규모로 합필을 하게 되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도시의 비가역성이다. 쉽게 말해, 필지를 합치는 것은 수월하지만, 이를 다시 기존의 소필지 연합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마치 신체의 세포가 괴사하면 다시 재생되지 않는 것과 같이 합필된 필지는 작은 세포로 나누어지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규모 필지로 도시가 변모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니즈가 변화함에 따라 역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필지별 건축행위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소필지가 만들어내는 도시의 다양성과 이벤트의 창발을 통한 활기를 만나기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점점 그 존재가 귀해지고 있는 소필지의 도시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타임프레임에 있어서 단지 규모의 거대 필지보다 훨씬 기민한 것은 당연하다. 아파트 건설을 위해 대규모로 합필되고 있는 도시의 구조는 현재와 같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에는 타당성을 지닐 수 있지만, 장차 예상되는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사회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힐지 불확실하다. 그리고, 그 예상할 수 없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 대단지의 필지들은 유연성과 민첩성이 심각하게 부족할 것은 쉽게 예측가능하다.

60여년전 뉴욕의 대규모 도시개발에 맞서 제인 제이콥스와 같은 이들이 도시의 다양성, 작은 필지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보존하는 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뉴욕이라는 대도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도시도 양적인 공급에 목말라하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이제라도 도시의 경쟁력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시의 틀거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