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의 건축주는 시민이다

  • Date2023.08.28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건설 공사 수주액은 206조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SOC예산의 감소, 기준금리 급등으로 인한 시장 환경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공공건축 부분의 발주액만 55조원에 달해 여전히 공공부문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생활환경에 미치는 공공건축의 영향은 발주액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공공건축을 어떻게 생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일까에 대한 논의들은 늦었지만 필연적으로 거쳐 가야 할 과정이 되었다.

공공건축은 주택 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기반을 이루는 동사무소, 구청사 등의 공공업무시설, 도서관,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노유자시설, 각급 학교건축, 철도역사등의 교통시설, 체육시설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공공건축을 짓고, 시민들에게 어떤 공간 경험을 선사하느냐는 그 사회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된 중차대한 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채워나가고 있는 공공건축의 결과물들을 보자면 사용자인 대중의 경험이 세심하게 고려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있다고 하기 힘들다.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기 위해 학계와 공공의 노력은 몇 가지 결실을 만들어왔다. 우선, 공공건축 사업계획 수립 시 사전검토와 공공건축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공공건축물의 공공적 가치와 디자인의 품격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공공건축이 어떠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주먹구구식의 행정으로 결정되던 오랜 관행을 타파하고, 건축기획업무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건축의 설계자 선정에 있어서도 여전히 공정성의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지만, 민간과 공공에서 부정한 과정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의식적으로 전개하고 있어서 개선되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있다.

건축이 생산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요소는 기획,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로 나눌 수 있다. 기획은 건물이 어떠한 내용을 담아낼지에 관한 일이라면, 건축주는 그 건물을 짓기 위해 비용을 조달하는 사람, 설계자는 건물을 어떠한 형태와 구조로 지을 것인지 고안하는 사람, 시공자는 설계된 건물을 의도한 바대로 구현하는 사람이 된다. 좋은 공공건축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위의 네 가지 요소가 체계적으로 결정, 관리, 실행되어야 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네 가지 요소를 공공건축의 생산과정으로 치환해보자면 건축기획은 공공건축 사업계획 수립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설계자는 설계공모시스템을 통해 선정되는 체계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점차 그 모양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건축의 건축주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에 있다.

공공건축의 주인은 우리 시민들이다. 불특정 다수인 시민들이 건축주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발주처가 되어 건축주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점이 공공건축을 만들 때 건축주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발주처는 공공건축 생산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는 의지는 있지만, 좋은 공공건축물을 갖기 위해서 수행해야 하는 건축주의 대리인으로서 발주처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주처의 의욕 과다로 공정한 과정을 통해 선정된 설계자인 건축사를 단순히 용역업자로만 다루고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설계과정을 이끌려고 하는 현상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건축사는 인증된 대학에서 5년간의 교육을 받고, 법으로 정한 기간의 실무수련과정과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이다. 아직까지도 건축사를 도면을 대신하여 작성하고 여러 관련 업무를 대행해주는 용역업자로 여기는 발주처의 구시대적 인식이 일부 남아 있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공건축물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공공건축을 만드는 법에 대한 각각 이해관계자들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 되었고, 부분적으로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공공건축을 생산하는 축을 담당하는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대를 획득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줄 수 있는 공공건축을 만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