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건축가의 공공건축하기
- Date2020.08.21
사무소를 개소한지 5년차에 들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공공건축과 민간건축을 오가며 두 영역의 특성과 장점을 선순환시키는 것이 내가 건축설계를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초기의 믿음을 지키며 일을 하고 있다. 개소 당시, 서울시 공공건축가에 발탁되어 다양한 소규모 공공건축설계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찾아가는 동사무소 리모델링, 도시건축센터 라운지 리모델링, 서계동 빌라집 리모델링) 또한 교육청에서 기획하는 ‘꿈을담은교실’ 및 메이커스페이스 리모델링 사업에도 참여하고 하고 있으며, 현상설계를 통해 중학교 체육관 증축설계를 하게 되어 작년에 준공한 프로젝트도 있다. 최근에는 공모를 통해 당선된 구청로비 증축설계의 실시설계 납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외에도 당선작으로 연결되지 못하였지만 수 차례의 공공건축 현상설계에 지명 및 일반공모 형식으로 참여하여 수상과 탈락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수의계약과 공모당선을 통한 작은 규모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몇 차례 경험하면서 2020년 한국땅에서 ‘제대로 공공건축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매 순간 느끼고 있어, 현장의 어려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설계자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 지켜내기 힘든 부분은, 제대로 된 설계비를 받는 것이다. 설계계약을 할 때, 발주처에서 설계비 산정근거를 공개하지 않거나, 제대로 된 근거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산정한 설계비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들어, 건축설계에 요구되는 부가적인 업무가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그에 따른 추가 용역비를 산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은 전체 공사비 대비하여 설계비 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공사비를 작게 산정한 후에, 설계계약이 이루어진 후에 공사비를 증액하는 악의적인 경우도 경험해 보았다. 건축사법에 있는 설계대가 산정근거에는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설계의 경우, 기본설계비의 1.5배로 계산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오히려 기본설계가 필요없다하여 기본설계비보다도 적은 액수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형사무소가 아닌 중소규모 설계사무소의 경우에는 설계비를 포함한 계약상의 많은 의무사항들에 대한 법적 검토가 쉽지 않고 대응방안의 프로토콜도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발주처와의 갈등이 있을 때, 건축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갈등을 중재하거나 해결방안을 조언해 줄 대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게 어찌어찌 계약을 하고 나면, 공공건축이 가지는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수 차례의 심의, 자문, 심사 프로세스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공공건축이다보니, 사업의 취지와 진행을 설계자와 발주처가 단독으로 폭주하지 못하도록 견제장치를 두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러 차례 이런 자리에 설계자로서 참여해보니, 마치 취조당하는 것 같은 고압적인 분위기일 때가 많았다. 설계자가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몰아붙이고, 질책하고, 훈계를 한다. 건축설계는 홀리스틱holistic한 것으로, 세부와 전체를 모두 생각하며 반응해야 하는 조심스러운 작업임에도, 외부의견들은 그 당시 문제되는 일부분의 사항만 고려하여 난폭하게 설계안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또한, 발주처의 경우 공공건축은 시민의 것이고, 전문가인 설계자가 공모전이라는 절차를 통하여 시민들로부터 설계권을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마치 자신들의 단독주택 설계하듯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의견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견제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촘촘히 설정해 놓는 것은, 최악의 건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지하는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최선의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수 많은 보고와 그에 따른 변경절차를 거치다보면 내실있는 설계에 집중하기 보다, 행정업무를 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고 만다.
최근 들어 설계의도 구현권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법적으로 설계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설계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는 그러한 설계자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믿어주는 사회분위기가 꼭 필요하다. 수 차례의 설계검사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슬프게도, 막상 설계자가 기술적인, 시공적인 영역에서 도움이나 자문을 받고 싶을 때는 공식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예를 들어, 전국의 주민센터는 수 천개가 지어졌지만, 주민센터를 처음으로 설계해보는 설계자의 경우, 그 동안 쌓인 지식과 노하우는 공유되지 않아, 알음알음 스스로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은 하자 혹은 시공 중 설계변경이라는 비용을 치뤄야 하는 결과를 남긴다. 심의, 자문, 심사등의 외부견제 프로세스가 설계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설계자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경험을 공유하고, 격려해주는 절차로 바뀌어 설계자의 자발적인 도움 요청이 많아진다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설계자로서 가장 좌절스러울 때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시공사를 만났을 때인데, 소규모 공공건축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가격입찰이라는-형식적 공정성은 확보하였지만, 실질적 공정성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을 통하여 시공사를 선정하게 되고, 이 때 선정되는 시공사는 이전 실적의 평판이나 품질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현 공사의 품질관리가 다음의 일로 연결되는 민간공사의 시공사처럼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일정 공사비 이상의 공사에서 4천만원 이상의 공사물품을 사용하거나, 그리고 가구 및 제품을 구입하려는 경우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을 위해 조달청 등록 제품을 쓰도록 되어있다. 조달청 등록제품의 경우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고, 홈페이지의 사용도 불편하여 마음에 드는 것을 검색하고 고르는 것이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또한 설계자가 특정제품을 밀어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도서에는 제품의 이름을 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설계상 꼭 필요한 부분이라도 원하는 제품이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제작가구의 경우는 공사비처럼 객관적인 금액이 정해지기 힘든 품목이고 만듦새에 따라 단가가 천차만별임에도 설계자는 좋은 가구제작자를 선정할 방법이 없다.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알 수 없으므로, 평균 혹은 최소의 제작비용을 산정하여 내역을 제출할 뿐이다. 좋은 건물을 만들고 싶다는 설계자의 사명감 하나로 헤쳐 나가기에는 여러모로 버겁고 귀찮은 절차들이 많고, 그렇게 해서 도서를 납품해도 좋은 시공자, 제작자를 만나는 것은 그저 운에 맡겨야 할 뿐이다. 형식적인 공정성을 획득하고자 결과물의 품질이 하락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업체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시공의 퀄러티를 높일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입찰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이나 PQ방식의 계약(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은 자칫 부정한 계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나아질수록, 개인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명예시스템honor system이 작동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긍정적이게도,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설계자와 발주처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건축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여전히 감시와불신을 근간으로 하여, 능동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건축의 질을 생각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를 지나, 건축이 문화로 자리잡고, 건축가가 우리 사회의 문화를 담당하는 전문가로서 책임감 있게 일하고, 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날을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건축가로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